대한민국 과학 기술의 미래를 이끌 핵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 예산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과학고, 영재학교, 그리고 4대 과학기술원의 교육 시스템이 일부 학생들의 편법적인 의대 진학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2025년 10월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집중적인 지적에 대해 "근본 대책은 아닌 것 같다"고 인정하며 대책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민수 의원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과학고나 영재학교는 의대와 약대 진학을 억제하기 위해 장학금 환수 등의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 진학한 후 중도 이탈(자퇴·미복학)하여 의약학 계열로 재진학하는 경우, 별도의 제재가 없다는 실정입니다. 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인재 유출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음이 수치로 확인되었습니다.
최근 4년 동안 과학고나 영재학교 출신이 과학기술원에서 중도 이탈하여 의약학 계열에 진학한 학생은 최소 143명에 달합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1년에는 중도이탈자의 62%가, 2022년에는 45%가, 2023년에는 34%가, 그리고 지난해(2024년)에는 42%(32명)가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갔습니다. 이는 과학기술 인재로 키우기 위해 투입된 국가적 자원과 교육 시스템이 결국 의사 양성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에 그치고 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하는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4대 과학기술원 중에서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상황은 가장 심각합니다. KAIST는 의대 진학을 위한 중도이탈 비율이 4년 평균 54%에 달해, 이탈 학생의 절반 이상이 의약학 계열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83명은 1학년도 마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심지어 첫 학기를 다니지 않고 휴학 후 자퇴한 학생도 6명이나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통계는 과학기술원이 사실상 의대 재수를 위한 임시 피난처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한 의원은 유튜브에서 KAIST에 3일 다니고 의대를 갔다고 자랑스럽게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사례까지 언급하며, 국가 예산으로 지원을 받은 과학고, 영재학교 출신들이 편법으로 의대를 가는 행위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과학기술원은 국가 연구개발(R&D)의 핵심 인력을 양성하고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력을 제고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입니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특수 목적 대학의 교육 기회가 의대 진학이라는 개인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국가 예산 지원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한민수 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에 대해 배경훈 과기부총리는 "이탈 방지 제재나 진로 적응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지만 근본 대책은 아닌 것 같다"고 현 상황의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이는 현재의 장학금 환수와 같은 제재 조치만으로는 의대 진학이라는 강력한 유인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당국의 인식을 반영합니다.
배 부총리는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교육부와도 논의하겠다"고 답변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과학고, 영재학교는 교육부 소관이고 과학기술원은 과기부 소관인 만큼, 범부처적인 차원에서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일관성 있는 인재 양성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장학금 환수의 범위를 과학기술원까지 확대하거나, 의대 입시 전형에서 과학기술원 출신에 대한 일정 기간 제한을 두는 등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인재들이 의료 분야로 쏠리는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진로 선택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미래 성장 동력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합니다. 4년간 143명이라는 인재 유출 규모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배경훈 부총리가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과기부와 교육부는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제재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가 의료 분야 못지않게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과학 인재가 과학기술 분야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사회적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